how are we doing

 

 

어떤 결과에 대하여 과연 근본 원인을 알려 하고 이를 탐색하여 조절하는 것이 진정한 접근법인가에 의문을 품고 많은 모습이 있어 왔습니다. 아니 실제의 삶 가운데 반복되는 어떤 결과 현상이 멈추지 않고 삶의 괴로움이 더하여 짐을 문득 깨닳고, 그간의 방법이 그렇게 적절한 것이 아니구나 하며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 내린 결론이 곧 근본에의 탐색임을 많은 사람들이 거론하여 왔을 것이라 본다면 그렇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경우에도 그간 몇 차례 다루었으며, 이미 세상에의 보다 앞선 체험자와 지식인들에 의해 알려진 바, 지구의 환경 여건에 다수의 의견 제시가 이루어져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살고 경험하는 근래의 어떤 불익과 혼란을 통해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그에 대해 의문과 관심을 지니게 하심은 창조주 하나님의 각 인생에 불어넣으신 가능성의 토대 위에 이루어져 나가게 하신 것일 것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지구의 여러 조건과 환경 여건과 시물레이션 기법과 수 많은 기기들을 통한 탐색과 학자 등을 통해 여러 감추어진 알려진 자료를 통해 많은 일들이 있어왔으며, 그 일들에 대한 대비로 무언가를 이루어 나가고 있으며, 이와 연관된 수 많은 모습이 또한 인생에 주어지는 일이 되어 각 인생에의 삶을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져 나가게 하십니다.

 

금번에 관심을 두는 것은, 겨울이 추운 것은 당연한데, 물론 그간의 오랜 역사적인 자료 위에 추운 것이 타당한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급작스런 추위와 지진 등과 관련하여 얘기를 좀 다루어 봅니다.

 


모 신문 기사 읽은 후, NASA webpage서 얻은 자료로, 지난 2월 미대륙 한파 모습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이미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은 다양한 답을 얻어 왔으며,얻어 내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대체로 잠잠하신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그 기록이 있듯, 애굽이라는 곳에 사백여 년 노예의 삶과 그 후의 대 탈출을 오래 전에 예견하시어 알리시고, 때가 차서 모세라는 인물을 통해 그 약속하신 바를 이루심을 통해, 창조주께서는 언제나 드러내지 않으시지는 않으시며 나아가 그럴 필요가 없으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AI에 기대어 많은 것을 예측해 보려는 이 세대의 시의 적절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의 신적인 지위로 우대하려는 접근은 또한, 일반화 수준으로 상대적 동반 하락이 되어 갈 수 있을 것이며, 때가 되면 그 당대의 유용한 도구 수준으로 인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알게 되는 바와 같이, 물론 일반인도 그러할 것이며, 드러내지 않으시고 나타내지 않으신다고 존재하지 않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단지 그것을 감각할 수 없는 당사자에게 있어서만이 그런 모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학령기를 통과해 낸 인생은 다양한 지식 접근을 통해, 이런 환경의 모습을 이해하고 가늠해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여러 부적절한 행동의 결과가 주변을 혼란하게 한다는 것을. 쉬운 예로, 자신이 의도적이든 무심코든 버린 쓰레기가 그 주변을 이전과는 다르게 변하게 하는데,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많게 작용하게 한다는 것.  누군가는 그 부정적인 행위로 인해 또 다른 긍정 부정이 함께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그 말도 전혀 틀리지 않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그 적정 수위인 균형을 넘어서면 곧 그에 대한 반대 급부는 언제든 좋게 유지하면 나았을 모습을 더 험하게 훼손하게 한다는 것을 놓치면 곤란합니다. 이 궁금은 이미 여러 인생의 선배들에 의해 자료화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겸손이 좋음을 알게 하심일 것입니다.


근래에 북미 지역과 유럽과 러시아 지역 등을 대체로 제외하고는, 대기의 오염의 고통이 의례 당연한가 보다 하며 지냄이 익숙해져 온 모습입니다. 본인도 체험하며, 이와 관련하여 몇 차례 의견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그간의 역사적 행보에 근간하면 누군가의 손해 봄과 같은 처지는 인생의 당연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한 인생이 누군가의 관리 하의 삶을 통과하며 나아가 언젠가 삶이 나아지고, 또 순환하여 그 사람이 관리자가 되고 누군가를 관리, 피고용인 등의 모습이 됨이 삶의 일반이기도 합니다. 이에서 자유로움은 인생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 어느 정도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인간 죄성의 본성이며 굴레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아가 그 일을 기계에게도 이전이 되는 모습이고, 아직까지는 감정이 없는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기계는 그렇다 하여도, 인생 간에는 그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사회적으로 문제시하여 접근함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합니다. 다만, 환경의 발생과 그 곤란을 이해하는데 지식적으로 접근하여 풀어내며, 이해를 더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구라는 행성, 지구에 거하는 삶에는 때로 왜 그런 자연 발생적인 여러 재난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체로서 우리 각자가 경험함과 같이 동일한 표현으로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음은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그 상응의 정도 차이와 함께 어떤 자극에 그에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좋음과 선함은 물론이거니와 핍박과 잘못에 대해서도 인내와 참음과 도리어 사랑으로 행함은 밝은 빛과 같은 현상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이며, 인문학적으로는 정의와 좋음과 불편과 고난과 불의의 경험은 또한 그에 대한 판단으로 접근하며, 과학적으로는 작용과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의 접근으로 무언가와 무언가의 결과에 대해 이해하려 한다고 보입니다.


좀 말이 어려워졌는데, 그렇다고 본인의 평범한 인문 소양을 오해하지 않길 바라며, 쉬운 접근으로 돌아갑니다.


왜 자연의 재난이 일어나는가.


혹자는 좀 성경에 대해 아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된 누군가 십일조를 많이 했는가 보다. 전혀 근거 없다고는 볼 수 없으며, 논란의 평가가 필요함에도, 이 부분은 좀 유머로 이해를 바랍니다. 더하여, 그러므로 세게 기도함은 약하게 기도함과 같이, 주의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지구는 때마다 왜 그런 곤란을 경험하게 하시는가. 앞서와 같이 우리의 행위로 인함이지 하나님이 원하셔서 그러시는 것은 아님이 대다수가 아니겠는가, 나아가 하나님께서 좀 더 종합적으로 인류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계신다는 접근이 유효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악의 행위에 대해 눈 감으심에 비판 하고픈 인생들이 있음을 가늠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낮음보다 언제나 더 높으며, 깊으며, 넓게 다루시는 창조주의 일하심으로, 무언가 적절한 일들을 일어나게 하심으로 여기며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질병이 없다면 사람들은 과연 운동을 하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질병의 존재를 두둔하는 것은 아님을 이해 바랍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이 아는 지식인들, 부모의 경우와 같이, 그 선험적인 내용을 미숙한 어린 자녀에게 알림이 적절한가의 고민과 같이, 창조주께서 행하심에 인생이 아는 것에도 유추 적용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간 인류의 놀라운 업적의 가능 이면에는, 그 정도 지식 습득과 성취가 그 세대에 적절한 것이기에 존재하게 하심으로 여기면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인류는 때로 너무 앞서고 싶거나 하여 여러 시도를 하는 경우가 있음과 실체에도, 그에 대한 역작용 또한 간과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놓쳐서는 곤란합니다. 여하튼, 그 모든 모습은 주어진 인생에의 시기에 역사와 연대기적으로 합당하기에 그 일이 일어나는 것 임도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온순한 정도를 넘어서는, 폭풍과 폭염과 추위와 폭설과 지진 등의 발생의 이유는 왜 일어나게 하시는 것 일가요, 왜 일어나는 것인가요.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림은 인생의 어느 정도는 존재하는 모습인데, 그렇다고 언제고 자신 이외에 책임을 전가함도 그렇게 타당하지는 않다고 보입니다.


기독교인이라 하여,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모두 전가함이 가능해 졌다고, 항시 언제나 그런 삶이 유효하지 않음의 경고와도 같이 말이죠.

 

과거로부터, 근자에 경험하는 각자를 넘어서는 지구 공동체에 드는 때마다의 곤란에 대해서는 어떠한가요.
최근의 한예로, 한파와 관련된 매체의 안내를 통해 본, 지구 공동체의 곤란의 진단과 해법은 무엇인가요. 마찬가지로, 처방이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답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언제나 함께 이루어지지 않음이 있기에, 사람의 미숙함으로 책임이라는 고통을 함께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1932 - 2020에 걸쳐 지구 대기 온난화 수준을 가늠해 보게 하는 자료입니다. NASA

 

삶과 죽음에의 불안과 고통에 대해, 인생이 천국에 거할 수 있음에의 정답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사함을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보이심을 믿음으로, 나아가 말씀하신 삶을 살아냄이 정답임을 이미 이천여 년 전에 주셨습니다.


이 글의 취지는 함께 단지 잘 알지 못하거나 궁금하였든 누군가에게 그 내용의 어느 정도를 알아 지식의 충족을 이루고 나아가 각 개인의 삶에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은가의 사고의 자극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적절함의 기대에 근거합니다.


더위가 나쁜 것이 아님은 압니다. 다만 더운 여름날에 굳이 오리털 파카를 입어야 하는가 입니다. 굉장히 더위에 내성이 있는 존재들을 위한 곳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 듯 한데, 과연 어디로부터 온 존재가 그런 더위에 익숙해져 좋아하고 있는지 좀 의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더운 여름날 겨울외투를 꺼내 입고, 한번 멋지게 달려보신 적이 있던가요. 벗겨지지 않는 그 옷을 입고 더위를 식히려면 일단 멈추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을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는 여름에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공감은 그런 것 같습니다.

지구는 자체 제어 활동 시스템을 통해, 생명체를 자극해 경고, 제어를 하면서도, 외투를 입고 달리지 않을 수 없는 근래의 환경 아래, 그 더위에 상응하는 바람을 일으켜 식혀나가는 모습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오염 부분도 같은 선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귀를 열고 들어보세요

 

창조주로부터 지음 받은 생명체인 우리는 그간의 경험에 근간하여, 우주라는 공간을 운행하게 하신 지구라는 행성 또한 살아있음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먹거나, 소화의 시간을 주지 않고 먹으면 체하거나 가스가 차서 불편 등을 경험으로 압니다. 단지 때로 그것을 모르며, 가벼이 여기며, 잊으며, 잊은 것 조차 모르기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원인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처방은 무엇 인가요. 문제 안에 답이 있듯, 처방도 모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쁘면 즐겁고 슬프면 낙심하고 때로는 울고 싶고 화나면 분노하게 됨과도 같이, 그 모든 조합에 근거하여 지구가 보여주는 그간과 앞으로 환경을 토대로 일어나는 여러 반응은 곧 살아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음 받은 지구가 보여주는 반응의 경고에 무심하지 않은 지구 공동체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여러분은 어떠하며, 지구는 어떠한가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Mar 2021